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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고려시대)] 이자겸

이자겸은 예종에게 자신의 딸(2녀- 둘째딸,문경태후)을 시집보내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선 이후,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외손자인 인종에게 다시 두 딸(3녀, 4녀- 폐비)을 시집보냈다.

인종은 자신의 권한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던 이자겸(문벌귀족)이 부담스러워 하였고, 그래서 은밀하게 이자겸을 제거하려 했다.
이자겸은 왕의 의도를 먼저 알아차리고 부하인 척준경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1126). 반란군은 궁궐로 들어가 건물들을 불태우고 인종을 잡아 자신의 집에 가두었다.

인종이 척준경을 설득하여 오히려 이자겸을 붙잡아 전라도 영광군으로 유배를 보냈고, 그 후 지방 출신의 신진 관료 세력을 활용하여 척준경마저 제거하고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이자겸의 난)

유배를 간 이자겸은 ‘정주굴비(靜州屈非)’ 이 네 글자를 건석수어에 써서 임금에게 진상했다. 정쟁에 밀려 비록 이곳에 귀양살이를 하고 있지만 결코 굴하거나 꺾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보냈던 것이다.
이를 맛본 임금 인종은 ‘이것이 정주 굴비인가’ 했을 뿐이었다.

* 폐비: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 또는 그렇게 된 왕비

* 정주: 지금의 영광군
* 석수어: 지금의 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