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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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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1863 ~ 1945)] 조봉암

조봉암은 강화 태생이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여 1년 간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일본에 건너가 도쿄중앙대학에서 1년 간 정치학을 공부하고 비밀결사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이념에 의한 독립 쟁취를 목표로 항일운동을 하다가 귀국했다.

1925년 조선공산당 조직에 참여했고, 그 산하단체인 고려공산당청년회의 간부가 되었다. 이 해 공산청년회 대표로 상하이(上海)를 경유, 모스크바에 가서 코민테른 총회에 참석하고 이어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 공산대학(共産大學)에서 2년 간 교육을 받았다. 

귀국 후에 노농총연맹조선총동맹을 조직, 문화부 책으로 활동하다가 상하이로 가서 코민테른 원동부(遠東部) 조선대표에 임명되고 이에 ML당(黨)을 조직하여 활약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 간 복역했다.

출옥 후 인천에서 저항운동을 하다가 다시 검거되었으나 광복과 함께 풀려났고, 인천에서 치안유지회, 건국준비위원회, 노동조합, 실업자대책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조선공산당 중앙간부 겸 인천지구 민전의장(民戰議長)에 취임했다. 

이듬해 남로당 당수인 박헌영에게 충고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산당을 탈당하여 우익 진영에 가담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이어 초대 내각의 농림장관으로 입각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재선되어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으며, 1952년 제2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여 차점으로 낙선했다. 1956년에도 제3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이 해 11월 진보당(進步黨)을 창당하고 위원장이 되어 활동하다가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처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