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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싹튼 최불암의 영화인생 -퍼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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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강영진(hstorykang@naver.com) 작성일 : 21.04.08 조회수 : 466 | ||
극장에서 싹튼 최불암의 영화인생
▲배우 최불암
“1940년에 인천 금곡동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아버지께서 중국 상해에서 큰돈을 벌어 지금 인성초등학교 자리에 집 겸 사무실로 건설영화사를 차리셨다. 옛날 고관대작의 집이었던지 경치가 참 좋았고 집이 워낙 넓어서 다리를 건너 들어가야 할 정도였다. 안채, 바깥채 따로 있었는데 거기에 주거와 함께 회사를 차리신 거다. 배우들이 와서 기숙할 정도로 넓었다.”
▲최불암의 집이 있던 곳. 현재 인성초등학교 ▲데쉴러 저택
그 집은 나중에 우로꼬라는 일본식 식당으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최철이 인수하였다. 그 후 제일교회의 다비다모자원으로 사용되다가 철거되었다. 현재 인성초등학교 자리이다.
▲최불암 가족 (왼쪽부터 최철, 최불암, 이명숙)
▲1946년 8월 2일 대중일보 (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1946년 8월 2일 대중일보 (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최철은 건설영화사를 설립하자마자 첫 번째 작품으로 '무영의 악마'를 제작하였다. 월미도를 비롯하여 인천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기사를 보면 다음 2회 작품으로 ‘복수’를 제작 준비 중이라고 나온다. ▲1947년 3월 5일 대중일보 (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영화 ‘수우’ 광고. 1947년 12월 7일 제일신문 (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영화 ‘수우’의 한 장면
▲정의배 전 영화 촬영감독
"최철이 제작한 ‘수우’ 촬영현장에 간 적이 있었다. 인성초등학교 운동장 자리가 최철의 집이었는데 상해에서 왔다는 소문을 들었다. 검은 안경을 쓰고 키는 작았는데 체격이 땅땅했다. ‘수우’는 경찰청 후원으로 제작한 반공영화였다. 반도영화주식회사 사람들이 스텝이었다. 감독은 안종화, 촬영은 홍일명이었다. ‘수우’의 세트촬영은 최철의 큰 저택에서 했다. 최철의 일본식 저택 내부를 개조해서 영화 세트촬영의 거의 모든 장면을 촬영했다.” ▲1948년 3월 17일 대중일보 (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아버님이 서울 상영 때문에 서울 남산 회현동 어느 호텔에 머무셨는데 거기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님을 운구하여 인천에서 장례식을 크게 치렀다. 그리고 영정사진을 들고 동방극장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영정사진을 들고 맨 앞자리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영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반에 이명숙은 최불암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하여 명동에 은성이라는 주점을 차렸다. 은성도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명동백작으로 불렸던 소설가 이봉구와 변영로, 박인환, 김수영, 천상병, 박봉우 그리고 화가 손응성, 이종우, 김환기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자주 찾았다.
“동방극장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까 (한국인의 밥상) 제작진들이 극장의 형체도 없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가볼 필요도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꼭 보고 싶다고 해서 극장 앞에서 이 자리가 옛날의 동방극장이었다고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흔적도 없었고 예전 극장 앞 길이 꽤 넓은 길로 기억되었는데 가서 보니 참으로 좁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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