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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극장 매각, 단골관객들의 아쉬움과 회한! - 퍼옴
작성자 : 강영진(hstorykang@naver.com)  작성일 : 21.03.23   조회수 : 691


인천에서 태어나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고 결혼도 인천에서 했다. 당연히 인천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정작 인천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자주 갔던 애관극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정확히 말하자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는 사실을 불과 5년 전에 알 정도였다. 몇몇 분들에게 이를 여쭤보니 알고 계신 분들이 적었고 애관극장과 함께 자주 갔던 현대극장, 미림극장, 오성극장, 인천극장, 자유극장 등등 사라진 옛 극장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본 칼럼을 통해 사라진 인천의 옛 극장들이 인천시민 개인에게는 추억이었으며, 인천에는 평생 친구였고 우리나라에는 역사였다는 것을 조명하고자 한다.



▲미림 삼총사. 왼쪽부터 조점용 부장, 양재형 전무, 김기봉 상무


미림 삼총사라 불리던 분들이 있다. 영사기사였던 조점용, 기도였던 양재형, 간판을 그렸던 김기봉이 그들이다.


▲젊은 시절 조점용 영사기사


조점용 부장은 충북 음성의 무극극장에서 매점을 운영하던 누나의 권고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이후 무극극장 영사실에서 영사 기술을 2년 동안 익혀 영사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충북 보은극장에서 2년 동안 실무경력을 쌓고 인천으로 왔다. 부평 금성극장에서 일했고 군대에서도 원주 군인극장에서 영사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제대 후 부천 신세기극장을 거쳐 1972년에 미림극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2004년 폐관하는 마지막 날까지 영사기를 돌렸다. 30년 넘는 세월을 미림극장과 함께했다.

“미림극장은 중국영화를 많이 틀었다. 사람들이 엄청 미어터지도록 들어왔다. 내가 트는 영화를 보며 환호하는 관객을 보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당시는 서울보다 인천의 극장 입장료가 반값이라 서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화 한 편 보고 월미도 구경하러 가고 하루 데이트 코스로는 괜찮은 것이었다.”

양재형 전무는 문화극장의 ‘마사키’와 ‘골목가다’ 그리고 애관극장의 ‘고구마’와 함께 인천에서 알아주는 주먹이었다. 덩치가 큰 다른 기도와는 달리 마른 체구였는데 인천에서 그의 스피드를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날렵했다. 그에게 잘못 보이면 미림극장에 출입할 수가 없었다.


▲젊은 시절 김기봉 화백


김기봉 상무는 미림극장에서만 25년 동안 간판을 그렸다.

"중2 때 형님이 표관에서 선전부장을 하여 도시락을 갖다 주면서 자연스럽게 극장 간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간판에는 글씨만 있었고 그림이 없었다. 형님과 함께 인영극장에서 간판 그리는 일을 시작하면서 실력을 부족하다고 느껴 서울 국제극장을 찾아가서 일류 간판장이들에게 간판 그리는 법을 배웠다. 당시 인천은 나무판 위에 그림을 그렸는데 서울은 광목을 이어 큰 캔버스를 만들어 그렸다.”

▲김기봉 화백이 그린 미림극장 간판


▲미림회 모임


미림극장에는 단골손님들이 많다. 그중 ‘미림회’라는 모임이 있다. 인천중학교 9회, 제물포고등학교 6회 동창들이 만든 친목단체이다. 한 달에 한 번 미림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한다. 회원의 반은 인천에 거주하고 남양주에 사는 회원이 가장 멀다. 미림회의 단골 순댓집은 동인천 북부광장에 있는 인천순대이다.


▲김성운 미림회 회원


"친구들과 문학산 등산 갔다가 한 친구가 갑자기 미림극장 가자고 해서 오랜만에 왔는데 옛 추억도 있고 좋더라.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미림회’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친구들에게 ‘만원의 행복’이라고 해서 영화 보는데 1500원(조조할인), 순댓국에 소주 한잔하면 만원이면 되니까 친구들도 좋아했다. 한 달에 한 번 10명에서 14명 정도 모인다. 폐관 후 미림극장이 추억극장으로 부활하여 참으로 반가웠다. 15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으니 고맙기도 하고 사실 미안하다. ‘닥터 지바고’를 예전에 키네마극장에서 봤는데 그때는 영화가 2시간 정도 되었는데 미림에서 다시 보니까 3시간짜리 영화였다. 당시 러시아 혁명 장면이 다 잘려나간 것이다. 미림에서 다시 보니 너무 새롭더라.”


▲장정일 미림회 회원


“미림극장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자체에서 미림극장을 지원하는 건 돈이 얼마 안 들어가면서 생색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돈이 비교적 적게 들어가는 가장 훌륭한 문화사업인데 극장 입장료만 가지고 운영하라는 건 말도 없는 소리다.”


▲미림극장


미림극장은 1957년 평화극장으로 출발하여 1958년 ‘아름다운 숲’이란 멋진 의미의 극장이 되었다. 2004년 폐관 후 한동안 빈 건물로 방치되었다가 동구청과 인천시의 지원으로 2013년 추억극장 미림으로 부활하였다.


▲미림극장 맞은편 아파트 신축현장


그런데 미림극장 바로 맞은편에 대단지 아파트가 신축되면서 미림극장 건물이 매각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미림극장은 월 임대료를 주고 운영되었는데 극장 건물주가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극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상가가 들어설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은 지자체의 책임도 있다. 인천의 많은 역사적인 건물들이 하루아침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미림극장의 두 번째 폐관을 지켜보아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인천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since 1957 미림극장. 극장 3층에 마련된 미림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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