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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쇼, 영화, 연극… 복합문화공간 역할 ‘톡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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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강영진(hstorykang@naver.com) 작성일 : 21.02.18 조회수 : 521 | ||
애관(愛觀)의 도시, 인천의 극장사 ⑥ 공회당, 시민관, 제일회관
▲초기 공회당은 시민회관 같은 곳으로 요리실과 당구장이 있었고, 큰 강당이 있었다.
▲1924년 9월 4일 시대일보에 실린 인천국제청년데이 기사 (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1927년 3월 7일 매일신보에는 인천무용음악회가 열린 공회당 무대 기사를 실었다. (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1931년 11월 21일 개최된 인천용동권번 기생들의 ‘만주이재동포 위문의연기생연예대회’ 사진 1931년 11월 21일부터 이틀간 인천용동권번 기생들의 ‘만주이재동포 위문의연기생연예대회(滿洲罹災同胞慰問義捐妓生演藝大會)’가 펼쳐졌다. 무대와 관객석을 볼 수 있는데 관객석 맨 앞에 주저앉아 구경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재밌다. ▲인천부사에 실린 1934년 공회당 ▲1948년 2월 15일 대중일보에는 조선에서 처음 열린 인형극의 만원사례를 홍보하고 있다.(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조선에서 처음 보는 인형극을 했다. 만원사례였고 특히 학생 아동의 관람을 대환영했다. 배우가 인형 탈을 쓰고 한 것인지 궁금하다. ▲1949년 10월 23일 예수교 대부흥회. (출처 인천제일교회)
▲1949년 11월 12일 대중일보에는 황금일 여사가 칼빈 총탄을 복부를 받아내는 공연을 한다는 광고기사를 게재했다. (출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황금일 여사가 칼빈 총탄을 복부로 받아내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다는 광고이다. 세상에 이런 공연을 했다니 믿기가 힘들다. 그러다가 1950년 6.25 전쟁 중에 공회당이 소실되었다. ▲한국전쟁중 인천공회당이 소실되고 미군이 원조해 인천시립시민관이 신축됐다. 1955년 7월 (출처 김식만 ‘인천의 어제와 오늘’)
1955년 7월 기사다. 미군이 원조해서 3층으로 신축되어 1956년에 완공되었다. 이때 정식명칭은 인천시립시민관이었다. 줄여서 시민관이라 불렀다.
▲인천시민관 모습, 사진 왼쪽에 영화관이 보인다. 1950년대 후반 추정(출처 최성연, 화도진도서관)
▲인천시민의 밤' 개최 (1958년, 출처 국가기록원) 1958년 인천시민의 밤이 개최되었다. 사진을 보면 시민관 규모가 상당히 크고 세련되며 모던한 공간이었다.
▲1966년 인천시민관에서 인천시민 단합대회가 열렸다.(화도진도서관, 출처 최성연)
▲인천시민관은 1968년 제일교회에 매각되어 제일회관으로 변경됐다. (1969년 지도,출처 김식만 ‘인천의 어제와 오늘’)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인성여고 체육관으로 사용되었다. 인성여고는 농구부가 유명했다. 어느 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농구부가 연습 중이었고 코트 좌우에 관중석이 있었는데 위층에서도 경기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기억된다. ▲현재 인성여고 다목적관이다.
▲옛 공회당 위치
글· 사진 윤기형 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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