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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극장 - 미림극장
작성자 : 강영진(hstorykang@naver.com)  작성일 : 20.11.16   조회수 : 703
 

   © 제공: 한겨레

1957년부터 인천 동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미림극장은 2004년 문을 닫았다가 2013년 10월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하고, 올해 ‘인천 미림극장’이란 옛 이름으로 돌아왔다.

인천 중구의 애관극장과 동구의 미림극장은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을 가운데 두고 위아래에 자리한다. 애관극장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윤기형 감독은 미림극장으로 가는 길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인천 지역 극장의 흔적을 손으로 가리켰다. 상호 ‘문화 불한증막’은 예전 문화극장이 있던 자리임을 알리고, 중앙시장 출입구 옆 상가에는 낡아서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운 ‘씨네팝’(구 오성극장) 간판이 남았다. 오성극장은 미림극장 극장주의 사위가 미림극장 지척에 연 극장이었다고 한다.

“미림극장 사위 오윤섭씨가 미림극장 운영을 잘했답니다. 사위가 극장을 물려받겠거니 했는데 극장주는 아들에게 물려주었지요. 이후 독립한 오윤섭씨가 미림극장 옆에 ‘오씨 성의 극장’이라는 뜻의 오성극장(1971년 개관)을 지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윤 감독은 당시 오성극장이 흔치 않게 상가 2층에 세운 극장이었다고 설명했다. 극장 사업을 하자면 단독 건물을 짓는 편이 나았을 텐데 말이다. 상가 2층에 극장을 만든 것으로 보아 미림극장과 최대한 가까운 자리에 여봐란듯이 극장을 짓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 제공: 한겨레

옛 오성극장을 지나 30초쯤 걸었을까. 미림극장 입구는 저 앞인데 별안간 극장 건물 벽이 활짝 열렸다. 안을 들여다보니 어두컴컴한 상영관이다. 보통 영화관은 상영이 끝나고 출구로 나와 조금 걸어야 바깥세상(?)을 접하게 되는데, 미림극장은 상영관과 도로 사이에 벽 하나만 있고 출구가 바로 길가로 통한다.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극장이다. 영화 관람에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경험하는 것도 포함된다. 두어 시간 어둠 속에서 영화에 푹 빠져 있다가 곧장 햇빛 아래로 나서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 제공: 한겨레

미림극장 최현준(46) 대표가 독특한 출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사기사셨던 조점용 선생님이 자랑처럼 말씀했는데 미림극장은 한 번도 사고가 없었다고 해요. 옛날 극장들은 관객이 몰려서 다치고 깔리는 사고가 꽤 있었는데, 이곳은 인파가 몰리면 바로 길가 문을 열고 내보내면 되었다는 거죠.” 미림극장이 재개관한 무렵에는 상영관 입구로 다시 나오도록 안내하다가 코로나19 이후, 관객 동선을 분리하기 위해 예전처럼 길가 출구를 사용한단다. 최 대표는 “코로나 때문에 예전 미림극장의 추억이 다시 재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가영 감독의 단편 영화 [극장 미림](2018)은 관객이 뜸한 미림극장에서 만난 남녀가 직원들 월급을 걱정하며 “대표가 건물주 아니냐”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최현준 대표는 극장 운영과 기획을 맡고 있지만, 건물주는 아니다. 9년간 방치되었던 미림극장은 2013년 인천시청과 동구청, 비영리단체인 인천시 사회적기업협의회 삼자의 협의로 2013년 실버세대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재개관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이 중단되고, 미림극장은 다시 존폐위기에 놓이게 된다. 지금의 미림극장은 사회적기업협의회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힘을 보태 극장을 지탱해 온 결과다. 부천국제영화제와 구로문화재단, 서울아트마켓을 진두지휘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기획을 했던 최 대표는 2015년 합류해 미림극장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 극장으로 거듭나도록 힘을 보탰다.

© 제공: 한겨레

고전 영화와 독립예술영화가 어우러지는 미림극장은 영화를 매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해외 작은 극장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재개관 후) 처음 몇 년은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 공간이었어요.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으로 중학생 등 청소년들이 영화를 만들고 인터뷰를 하는 걸 운영하니 어르신들이 처음에는 좀 낯설어했지만, 아이들이 발표회 하면 관람하시는 분들은 또 어르신이 많았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되었어요.” 최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극장 곳곳을 구경했다. 3층에는 옛날 영화표며, 상영 스케줄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극장과 교류하는 일본 요코하마의 극장 ‘잭 앤 베티’의 관객들이 보내온 메시지들이 붙어있다. 곳곳이 따스하고 아기자기하다.

© 제공: 한겨레

‘잭 앤 베티’는 우리나라 ‘철수와 영희’처럼, 일본 영어 교과서에 실린 친숙한 이름을 극장 이름으로 지은 거란다. 문득 우리나라 극장 이름 중 가장 많은 게 뭘까 궁금해 윤 감독에게 물었더니 답이 대번에 나온다. “가장 흔했던 게 ‘중앙’이었어요. 애관과 미림이라는 극장 이름은 전국에 여기밖에 없어요. 애관은 ‘보는 것을 사랑하는 집’이고, 미림은 ‘아름다운 숲’이란 의미니까 참 예쁘죠?”

■ 125년 된 극장 구경하고 어디 가지? 뭐 먹지?

영화를 보고 나면 차를 마시며 이러쿵저러쿵 영화평을 주고받다가 극장 근처 맛집을 찾고, 술 한잔도 나누고 싶어진다. 애관극장 앞 개항로 길 ‘카페 싸리재’는 얼핏 일본인이 남긴 적산가옥을 개조한 곳으로 보이나, 이 일대는 조선인이 살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개항(1883년) 이후, 일본인 거주지로 조성한 현 중구청 인근의 도로가 격자로 반듯하게 만들어진 것과 비교하면 조선 사람이 살던 경동과 용동은 길도 구불구불하다.

주인 박차영씨가 구석구석 알뜰하게 돌본 ‘카페 싸리재’는 1930년대 초에 지었어도 정갈하고 포근해서 무엇 하나 신경을 거슬리지 않는다. 모카포트나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니 에스프레소 머신의 소음도 없고 음악만 고즈넉하게 실내를 채운다. 영수증에 ‘경기의료기 싸리재’로 표기된 게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주인이 이전에 의료기기 판매상을 하다가 2013년께 카페를 열었기 때문이다.

© 제공: 한겨레

이웃한 ‘이슬옥’은 1910년 지어진 목조 건물을 리모델링한 술집이다. 인천산 바지락을 주재료로 쓴 메뉴가 많은데, 저녁에 문을 연다 해서 아쉽게 돌아섰다. 주인 전이슬씨의 형제인 작곡가 전구슬씨가 만든 노래 ‘이슬옥’의 가사에는 개항로 거리의 변화상과 애관극장의 전신인 협률사와 축항사가 등장한다. 근처 겨자색 벽돌 ‘브라운핸즈 개항로점’은 1960년부터 2002년까지 이비인후과였던 건물을 개조해 만들어 ‘뉴트로 감성’ 카페로 소문이 난 곳이다.

동인천 지역 방문객이 꼭 찾는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애관극장에서 개항로 길을 따라 배다리 사거리 방향으로 15분 가면 만난다. 인천미림극장에서는 10분 정도 슬렁슬렁 걸으면 도착한다. ‘아벨서점’과 ‘한미서점’, ‘삼성서림’, ‘모갈1호(구 대창서림)’ 네 곳 헌책방 외에도 계좌이체로 책값을 치르는 독립 무인서점 ‘커넥더 닷츠’와 고양이 반달이가 지키는 ‘나비날다 책방’, 한옥 북 카페이자 그림 책방 ‘마쉬’가 있으니 함께 들러 볼 만하다.

근방에 병원을 개조한 카페가 또 있다. 한국에 하나 남은 백열전구 생산 조명기업 일광전구가 옛 산부인과 건물을 활용해 문을 연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다. 이곳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전구 만드는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꾸민 전구는 1층에 놓인 ‘세계 최초 전구 자판기’에서 판매한다.

카페 맞은편, 1972년에 개업한 화교 중식당 ‘용화반점’은 물기 없이 바짝 볶아 불내가 나는 볶음밥이 인기 메뉴다. 중구 신포동에는 1960년대 말부터 인천 예술가들의 단골집이었던 유서 깊은 선술집 ‘신포주점’, ‘다복집’, ‘대전집’이 모여 있다. 또한 신포시장 뒤편에 있는 ‘버텀라인’은 1983년 인천에 처음 생긴 재즈클럽이다. 100년이 넘은 근대 건축물에서 하는 라이브 연주는 운치가 있다. 금요일과 토요일 라이브 공연 일정은 버텀라인 카페(cafe.daum.net/Bottomline)에서 공지한다.

인천/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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